역사속의 오늘(7.15)

이준 열사 순국
기사입력 2016.07.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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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오늘’ 오늘은 이준 열사의 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통치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체결합니다. 이에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내, 일제의 조선 침탈과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1961.07.14 이준 열사 순국 제 54주년 추도식>
 
 이준 열사는 1907년 4월 22일 헤이그 특사로 서울을 출발해 러시아에서 이상설, 이위종과 합류,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해 만국평화회의 의장에게 고종의 친서와 신임장을 제시하고 대회 참가를 요청합니다.
 
<1963.09.30 故 이준 열사 유해 환국>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패한 의장국 러시아는 면담조차 꺼렸고, 영·일동맹의 두 당사자인 일본과 영국은 훼방을 놓아 회의 참석과 발언을 거부당하여 세 특사는 할 수 없이 각국 대표에게 호소문을 보내고 신문을 통해 국제여론을 환기시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각국 대표들이 여전히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1907년 7월 14일 이준 열사는 통분을 참지 못하고 헤이그에서 분사합니다.
 
<1963.10.04 故 이준 열사 유해 봉인식>
 
 이준 열사의 유해는 순국 3일 후 헤이그의 공동묘지에 임시 안장, 동년 8월 9일 일제통감부는 궐석재판을 하여 세상을 떠난 이준 열사에게 종신징역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순국 후 55년만인  1963년 10월 4일 이준 열사의 유해를 조국의 품 안으로 모셔와 온 국민의 애도 속에 국민장을 치른 후 서울 수유리 선열묘역에 안장합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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